몸쪽 공을 당겨 친다거나 바깥쪽 공을 밀어 치는 것은 비교적 가능한 것이지만 그와 반대로 몸쪽 공을 밀어치고 바깥쪽 공을 당겨 치는 타법, 원하는 방향으로 타구를 보낼 수 있는 타법이며 아주 효율적으로 안타를 만들 수 있는 타법이 바로 광각 타법인 것이다. 예를 들어 주자가 일루에 있다면 일이루간은 넓어져서 그사이로 공을 굴려 보내기만 하면 안타가 나오는 것이다.
5~6년간의 끊임없는 노력으로 광각 타법이 완성된 것은 장훈 선수가 약 24세 무렵이라 한다. 1967-1970 까지 4년 연속, 리그 수위 타자인 타격왕을 차지한다. 그러자 붙여진 별명이 바로 안타 제조기이며 장훈 선수의 타법에도 광각타법이라는 이름이 붙여지게 된 것. 얼마나 이 광각 타법이 유명했는가 하면 장훈 선수가 은퇴 후에 각 구단에서 장훈 선수를 초빙해서 광각타법을 강의 하도록 할 정도 이었다고 한다. 실제로 야구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장훈 선수의 광각 타법을 가장 잘 따라하는 선수는 스즈키 이치로 라는 말도 있다. 그만큼 장훈 선수의 광각타법은 계속 일본에서 이어져 왔던 것이다.
도에이 플라이어스는 니타쿠 홈 플라이어스로 이름이 바뀌고 다시 니혼햄 파이터스로 바뀌게 되는데 그사이 장훈 선수는 타격왕 7번이라는 경이적인 기록을 세우고 있었다. 그러나 1975년 .276라는 저조한 타율로 75년 시즌을 마감한다. 그때 나이가 우리나이로 벌써 36살 이였다. 그런데 요미우리 자이언츠에서 장훈 선수 스카우트 제의가 들어온다. 왜 일까???
창단 후 첫 꼴지를 기록한 자이언츠 장훈 선수가 필요하다
일단 요미우리 자이언츠는 어떤 팀일까? 간단하게 말하자면 65년부터 73년 까지 무려 9번의 일본 시리즈 우승을 차지한, 국가대표 프로 야구팀이라고 할 만한 팀이다. 거의 일본인중 40%(혹은 그 이상이라고 말하는 이도 있으나)가 좋아할 정도의 강팀이다. 그런데 팀 내의 4번 타자 「나가시마 시게오」(長嶋茂雄)가 은퇴 후 요미우리 자이언츠의 감독으로 부임한 첫해, 꼴찌를 하게 된다.73년까지 우승했었는데 감독이 바뀌자 바로 꼴지 ㅋㅋ 나가시마 감독의 경기 운영 미숙을 보여주는 여러 일화중 하나가 바로 몸을 풀고 있는 투수대신 벤치에서 앉아있던 투수로 교체한다던가 등등 인데 암튼 그는 실력보다 운이 좋았고, 능력보단 외모가 뛰어났다.
원래 자이언츠의 중심 타선은 ON포로 불리던 왕정치와 나가시마였다. 「O」는 868개의 홈런으로 홈런 세계 최고 기록을 가지고 있는 왕정치(王貞治)의 일본발음인 「오 사다하루」의 이니셜이고 , 「N」은 역시 1960년대 일본 프로야구 최고 인기선수의 한 사람이었던 「나가시마 시게오」(長嶋茂雄)의 이니셜이다. 두 사람은 요미우리 자이언츠의 최전성기인 1960년대 3, 4번을 치면서 요미우리의 일본시리즈 9연패를 이룩했던 주인공들. 당시 언론에선 이 두 사람을 합쳐 무적의 「ON 타선」이라 불렀다. 이부분에 있어서, 프론트와 벤치의 분석은 나가시마와 같은 중심타자가 필요하다는 결론을 내린다.
일리 있는 말이지만 나가시마의 팀운영 미숙이 한몫을 했을 것이다. 그리고 혼자 있는 강타자는 투수들이 왕정치 하나만 공격하면 되기 때문에 아무리 강타자가 잇는 타순이라도 혼자 있으면 그 힘이 발휘되기 힘들다. 암튼, 왕정치 혼자 있는 중심 타선을 보강하기위해, 요미우리 자이언츠는 퍼시픽리그 최고타자 장훈 선수를 모셔오게된다. 이로서 「OH타선」이 만들어 지는데, 여기서 「H」는 장훈 선수의 일본 이름인 「하리모토」에서 따온 것인데, 얼마나 요미우리 자이언츠와 나가시마 감독이 장훈 선수를 원했는지, 당시 장훈 선수가 몸담고 있던, 니혼햄의 오자와 감독( 나가시마 감독의 릿쿄대 선배) 에게 직접 장훈 선수의 요미우리 트레이드를 요청하지만 거절당한다. 그러자 이번에는 구단주까지 찾아가 설득함으로서 결국 트레이드를 성사 시키게 된다. 이미 이당시 장훈 선수의 나이는 30대 중반을 넘어 서고 있었음으로, 나이가 있는 선수를 데리고 오고 싶어 하지는 안았을 테고, 꼴찌를 기록한 감독이었으니, 그만큼 절실하게 믿을 만한 선수가 필요했을 것이다.
위의 사진은 요미우리 자이언츠의 홈페이지에 실려있는 사진이다.
打者に必要な全てを兼ね備えた天才打者だった。 타자에게 필요한 모두를 겸비한 천재 타자였다。
장훈 선수는 76년 자이언츠로 이적 했으니, 우리나이로 이미 37이었는데도 요미우리 입단후 맹활약을 펼친다. 결과적으로 나가시마에게 76,77 쎈트럴 리그 우승을 안겨주는데 공헌하였지만, 실력보다 명성이 부풀려져 있던 나가시마 감독이 이끌던 요미우리 자이언츠는 재팬 시리즈에서 76, 77 모두 한큐 브레이브스에 시리즈 스코어 4-3, 4-1로 무릎을 꿇고 만다. 아무리 생각해도 감독의 운영 미숙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다시 한번 드는 건 왜일까?
지금까지 실력 하나로 순탄한 프로 생활을 한듯 보이는 장훈 선수의 기록들 ....그러나 가려진 고난의 기록과 또 치열한 승부 그리고 통산 3085 안타라는 불멸의 기록까지는 다음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