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iday, 6 October 2006

김재박 야구는 번트야구가 아니다.

역대 최다 희생번트를 기록중인 김재박 감독.
사정이 이러니 번트 야구라는 말이 나오는것도 당연하다. 하지만 무사 일루 상황에서 번트 작전이 자주 나오는 배경에는 이유가 있다.

2006시즌 3점대 방어율 투수 24명
투수의 방어율 순위만 보더라도 1위 류현진(2.23) 부터 9위 랜들(2.95)까지 9명의 투수들이 2점대 방어율을 기록하고 있다. 게다가 3점대 방어율만 보면 무려 24명의 투수들이 우굴거린다. 상황이 이러니 1,2점이라는 점수가 쉽게 얻을수있는 점수가 아니란 말이다. 그러면 타자들의 성적을 보자 3할 타율을 넘는 타자들은 달랑 5명 뿐이다. 홈런 기록을 보면 더 민망스럽다. 달랑 26개...지난 1995년 OB 베어스 김상호 선수의 25홈런 이후 30개 미만의 홈런으로 홈런왕이 나온것은 이번이 처음이다.상황이 이렇다보니 한두점은 쉽게 뒤집을수도 없는 점수이며 쉽게 뽑을수도 없는 점수란 이야기.


현대의 병살타는 108개 전체 2위
무사 1루에서 어김없이 번트가 나온다고 하지만, 김재박 감독은 항상 무사 1루 상황에서 번트를 지시하지는 않는다. 타격감이 좋은 선수가 나왔을때는 강공을 지시하기도 한다. 단순히 최근 타율이라 데이터도 참고 하겠지만, 무사 1루 상황은 역시 병살타를 의식한것....그렇지만 현대 유니콘스는 무려 108개의 병살타로 병살타 순위 2위에 올라있다. (1위 한화 120개 3위 삼성 107개 )그렇게 병살타를 피하려고 번트를 지시 했지만...병살은 나온다. 그러다 보니 번트는 더욱 필요했을것이다.


많은 점수차 리드 그러나 또 번트?
현대가 가장 욕먹는 경우가 많은 점수 차로 이기고 있는 경기 종반에도 번트로 김을 뺀다는 것이다. 이부분은 조금 지적받을 만도 하지만 가을이 될수록 더욱 가차없이 추가점을 요구하는 김재박 감독의 모습은 분명 우승을 염두하고 있었다. 권오준,오승환 같은 선수가 있었다면 서너점 리드 상황에서 현대의 번트는 나오지 않았을것이다. 하지만 현대는 작년 7위라는 초라한 성적에도 불구하고 금년에 우승을 바라보고 있다.

야구 선수도 사람이다 보니 이겼다,,이젠 됐다, 하는 방심의 고삐를 당겨주는게 김재박 감독이라는 말이다. 사실 지나치다 싶을 정도였던 김재박 감독은 당연히 여겨지던 페넌트 레이스 1위, 삼성의 자리가지 위협하지 안았었나.


지키는 야구와 뭐가 다른가.
선동렬 감독의 야구를 '지키는 야구','이기는 야구' 라고 한다지. 타자들은 수비라는 기본기가 되어야 하고 또 투수진도 든든해지는 이상적인 야구....하지만 어떤 감독이 '지는 야구' 하고 싶겠나? 어떤 감독이 수비가 안되는 반쪽 선수를 쓰고 싶겠나......게다가 이런 모습은 김재박 감독의 트레이드 마크였는데.....막강 투수진으로 '지키는 야구' 라는 표현은 이해가 가지만 '이기는 야구'라는 표현은 썩 납득이 가지 않는다.최소한 자신의 야구가 '지는 야구'라고 하는 감독이 나오기 전까지는 말이다.

결국 어찌되었건 2006시즌 1위와 2위는 선동렬 야구와 김재박 야구가 차지했다. 코리안 시리즈에서 누가 삼성과 붙을지는 모르지만 코리안 시리즈가 기다려진다.

Tuesday, 3 October 2006

이승엽과 우즈의 백넘버 이야기

이승엽 선수와 홈런 경쟁에서 1개 차이로 앞서고 있는 주니치 드래곤스의 우즈.



우즈의 등번호는 44번이다. 그의 마이너 리그 생활 10년 동안 어떤 등번호를 달았는지는 확인하지 못했지만 두산에서 그는 33번을 달았다. 소문에는 두산에서의 빛나는 그의 활약에도 불구하고 프론트에서
우즈가 쓰던 등번호 33번을 다른 선수에게 허락하자 일본에 있던 우즈는 섭섭해 했다고 한다.
영구 결번이라는 영광을 누리지는 못했지만 한시즌도 기다리지 않고 정들었던 자신의 등번호 33번을
외국인 선수인 쿨바에게 허락했다는것도 그로서는 기분 좋은 일은 아닐것이다.


두산 베어스의 33번은 1983년 OB시절부터 김광림 선수가 사용하던 배번이며, 김광림 선수를 제외 하고는 우즈가 가장 오랬동안 33번을 달았다. 정들었던 33번의 추억 때문이였을까...그는 33번이 아닌 44번을 선택한다. 아마도 베이 스타스에 33번이 사용 가능했다면 33번을 사용했을것이다. 1999년 부터 카추아키 후루키라는 선수가 사용하고 있는데 성적은 그럭저럭하다. 그런데 재미 있는것은 이선수 통산 홈런이 현재 44개 ㅡ.ㅡ ...암튼 우즈는 현재까지 계속 44번을 사용하고 있다.
우리들이 별로 좋아 하지 않는 숫자 4. 두개를 겹쳐 쓰고 있는 우즈
그렇다면은 이승엽의 등번호는?
삼성에서 부터 롯데 마린스 시절까지 36번을 달았고, 요미우리에서는 36번을 다른 선수가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36번 아닌 다른번호를 선택했는데, 아이러니 하게도 과거 우즈가 한국에서 쓰던 33번이다.

33번에 애착을 보인 우즈 그러나 44번을 달게 되고
36번을 계속 사용하던 이승엽은 우즈가 전에 쓰던 번호 33번을 달게 된다.
배번만 보더라도 인연은 인연인 모양인데...
홈런왕은 꼭 이승엽 선수가 차지 했으면 싶다.
지금 시점에서 하나만 쳐서 일단 동률이 되면 해볼만 할텐데.......

Thursday, 21 September 2006

야구 종주국 한국???

블래터가 이랬다던데
왜 난 모르고 있었는지...7월이였군

http://www.chosun.com/se/news/200407/200407160372.html
블래터 FIFA회장 "축구 발상지는 중국"


베이징 AFP=연합뉴스

입력 : 2004.07.16 19:33 39'


제프 블래터 국제축구연맹(FIFA) 회장이 축구의 발상지가 중국이라고 주장해 관심을 끌고 있다.
2004아시안컵축구대회 개막식 참석차 베이징에 온 블래터 회장은 16일 아시안컵개최에 맞춰 열린 축구 엑스포에 참석, “FIFA는 축구가 중국 산둥성 동부지방에서처음 시작됐다는 중국축구협회측 견해에 동의한다”고 밝혔다.
엑스포에 참가한 스포츠 사학자들도 2천300년 전 산둥성에서 축구가 처음 시작됐다고 주장했다.
근대축구의 발상지는 1863년 최초로 축구협회를 설립한 영국이며 최초의 국제축구경기는 1872년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의 대결로 기록돼 있다.
근대 이전의 축구에 관해서는 고대 그리스와 로마 시대에도 비슷한 구기가 있었다는 설이 있지만 서기 1042년 영국에서 처음 시작됐다는 설이 설득력을 얻어왔다.
장지룽 중국축구협회 부회장은 “블래터 회장이 축구의 기원을 중국으로 인정했다는 점은 매우 의미있는 일”이라고 말했다.
피터 벨라판 아시아축구연맹(AFC) 사무총장은 “축구가 중국에서 시작됐다는 사실에서 알 수 있듯이 축구의 미래는 아시아에 달려있다”고 말했다.






용소야를 떠올려보면 그럼직도 하긴 하지만
바닥에 떨어진것을 발로 차는건 어쩌면 인간의 본능아닌가
그러면 스트레스도 좀 풀리는것 같고...

이젠 세계의 스포츠가 되버린 축구의 기원이 영국으로 결정난 지금에
발상지를 논한다는것 자체가 별의미도없고...

중국인들 왜그리 우기는지....그럼 우리도 우겨볼까나



자치기


자치기의 경기 룰을 보면 더욱더 야구와 비슷하다.
자치기
요약
나무로 만든 막대기를 가지고 치고받는 어린이 놀이.
본문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는 확실하지 않으나, 옛날에 어린이들이 가장 손쉽게 어울려 놀 수 있던 놀이로 거의 전국적으로 퍼져 있다.
자치기는 길이 60cm 가량의 큰자와 10cm 가량의 작은자를 이용하는데, 노는 방법은 고장에 따라 조금씩 다르다.
전라도 지방에서는 작은 구멍을 파고 구멍 위에 작은 자를 가로로 걸쳐놓고 큰자로 이를 떠서 날린다. 이때 수비측이, 날아오는 작은 자가 땅에 떨어지기 전에 받으면 '죽는다'고 해서 실격이 되고 공격과 수비가 바뀐다. 그러나 받지 못했을 경우에는 작은자가 떨어진 자리에서 구멍을 향해 던진다. 이때 날아오는 작은자를 공격자가 들고 있는 큰자로 되받아치기도 하는데, 작은자가 떨어진 자리에서 구멍까지의 거리를 큰자로 재어 득점으로 가산하며 득점은 많을수록 좋다.
그러나 반드시 거리만으로 득점하는 것은 아니다. 공격자가 나름대로 "몇 자다" 하고 외치면 수비측이 타당하다고 인정하면 그대로 가산하고, 만약 부당하다고 인정되면 재보자고 제의하여 큰자로 재는데 이때 선언한 수보다 부족하면 무효가 된다.
경상도 지방에서는 새끼자(작은자)를 구멍 속에 넣어 한쪽을 지면(地面) 위로 나오게 걸쳐놓은 다음, 어미자(큰자)로 가볍게 끝을 때려 공중에 뜨게 하여 떨어질 때 어미자로 되받아 친다. 이때 날아오는 새끼자를 수비측이 받아버리면 공격자는 실격되고 수비측은 100자를 얻으며, 못 받았을 때는 새끼자가 떨어진 지점부터 구멍까지 어미자로 재어 가산한다. 공격자가 헛손질을 하여 어미자로 새끼자를 때리지 못했을 때는 실격이 된다.

네이버 백과사전에서




위의 룰 이외에 다른 룰들도 있으나 위의 설명을 야구 용어로 바꾸어 써보자면
큰자는 배트 작은자는 볼이되며 그리고 땅에 판 구멍(구멍 주위에 원을 그렸음)은 베이스가 되겠다.

엄연히 플라이 아웃이 존재했다는점
그리고 그라운드볼은 작은원으로 던져 넣으면 아웃이 되는데,
그전에 공격자가 큰자로 쳐내는 것은 마치 투수의 피칭과 타자의 배팅이 떠오른다.

이번 검색으로 자치기에도 영남식과 호남식이 있다는걸 알았지만, 어렸을때 경기도에서 자란 내기억의 경기식은 영남식과 비슷했던것 같다....큰자로 작은자를 톡 쳐 올려 때리는 식이 였는데...주로 요맘때부터 시작했던듯.


지난 오랜 시간동안 동서양을 이어주는 채널은 중국이였고 일본이 그 바통을 이어 받았다.
미국이 과거 소비에트 연방을 붕괴 시켰듯이 중국의 각 소수민족들이 독립하기릴 기다리는 것은 너무 오랜 기다림이 될수도.....

Thursday, 7 September 2006

김재박 감독의 관점에서본 추신수와 김동주

추신수 선수의 대표팀 탈락으로 말들이 많다.
정확히 말하자면 추선수의 발탁을 바라던 팬들의 원망이 높다.
내가 좋아하는 인디언스에서 뛰고 있는 추선수의 성공을 바라지만 이번 탈락은 그에게 더 좋은 기회가 될것이다.





묘하게도 이런 눈빛의 사진을 싣다니....쩝
일단 문제는 김감독이 추신수 선수의 탈락 배경을 밝힌 것이다.
기자들의 질문에 김재박 감독의 "검증되지 않았다"라는 말이 빌미가 되었다.
지금 비난 받고있는 김재박 감독을 위해 먼저 따져보자....

김감독의 실수는 말실수일뿐
"검증되지 않았다" 라는 표현방법보다는, 다른 표현을 사용했어야 한다. 이유야 어찌되었건 선수선발은 감독의 재량아닌가.

감독은 선수들(상대팀 포함)의 장단점을 파악하여 그야말로 이길수있는 조합을 짜야 하는데 여기서 추신수는 불리했다.시즌 초반 추신수는 장타력을 선보이며 맹활약을 했었다. 그러나 그후 투수들의 견제를 받자 종으로 변화하는 구질에 약한 모습을 나타 냈었고 안타가 나오기는 하지만 배트 중심에 맞아서 나오는 안타는 많지 않았었다. 주로 빠른공에 타이밍을 맞추고 있어 변화구 공략에 힘들어하는 모습이였다.


이번 경기는 아시안 게임이다.
만약 이번 경기가 세계 대회라면 빠른공에 익숙한 타자들이 필요하다. 그러나 이번은 아시안 게임, 즉 아시아 야구에 익숙한 선수가 필요한것이 김재박 감독의 생각이였을것이다. 빠르지 않은 구속이라 눈에는 보이지만 변화가 심한 변화구 위주의 볼배합이라면 추신수 보다는 다른 국내 선수가 더 잘할수 있다는게 김감독의 생각이였을것. 게다가 일본은 사회인 야구팀이 나온다나....그러면 그러면..... 메이져 리거까지 나와야 하나...


김감독의 스타일은 전형적인 스몰볼
김감독이 선호하는 스타일은 물론 다른 감독들도 마찬가지겠지만....수비와 작전수행능력을 꼽는다. 이런면에서, 추 선수는 수비의 문제가 아닌 작전수행능력이 떨어진다라고 판단 했을수도 있다. 작전이 많이 나오는 김감독 스타일과 선수의 스타일이 안맞는다고 생각했을수도 있고.....팀워크 문제도 있을것이고....단기전임을 감안하면 작전 수행능력은 더욱더 중요해지기 때문.


그렇다면 추신수 선수는 검증되지 않았나?
일단 네티즌들의 반응은 김재박 감독에게 화살을 돌리고 있으나 제대로 알아보자.

일단 메이져 리거라 함은 세계 최고의 실력을 가진 야구 선수다.
이 부분 때문에 말들이 많은데....상당히 애매한 부분...왜냐하면 바로 내려가면 마이너 리그이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메이저 리그 진출이 검증은 아니며 메이저 리그의 꾸준한 활동이 바로 검증일 수 있다.
2006년 지금까지 그는 42경기 120 타수 그중 삼진 갯수는 무려 35개다. 일단 기록만으로도 맞추는 재능은 많지 않다고 보여진다. 그나마 14경기는 시에틀에 있을때 뛴 경기수이고 금년 클리브랜드 소속으로 뛴경기수는 28경기.

가능성 있는 선수로서의 검증은 메이져 리그 진출로 입증되었으나
메이져 리거로서의 검증은 메이져리그를 더 겪은 후에 해야 하는것이 옳다.


왜 김동주를 원했을까
또한 사람들의 궁굼해 하는것은 왜 부상이 완쾌되지 않은 김동주를 원했을까 인데 이점은 의외로 간단하다.
김동주의 몸상태가 비록 좋지는 않지만 그는 이름만으로도 대만 팀에겐 위협적인 존재.
실제로 그는 대만 투수들의 장타를 의식한 바깥쪽 승부구를 노려, 밀어쳐서 홈런을 기록한적도 있을 정도로 대만팀에서 껄끄러워 하는 선수중 하나. 게다가 3루수임을 감안 하면 그의 가치는 더 높아진다.

4번으로서 손색이 없는 몸매(?)와 중심타선의 무게감을 실어주는 그는 완벽하지 못한 몸상태이지만, 김재박 감독으로서는 꼭 필요한 선수였을것이다.



암튼, 언제쯤 우리나라는 사회인 야구팀을 국가대표로 내보내는 날이 올까...
아니면 최소한 병역 미필자들로 꾸려보는 날이라도 왔으면 ....9월 말까지 유동적이라니 혹시....ㅋㅋ

Wednesday, 30 August 2006

통일의 문......큐바의 야구이야기




'통일의 문'은 이북5도청 로비에 있다.
청동 조형물로 추정 되는 이것은 몇년전에 휴대폰으로 찍은것
직접 보았을때는 괜찮다는 생각이 들어 찍었는데
지금 보니 뭐....

사진처럼 사람이 들어가는 모습인데...통일이라는 문으로 들어가려는 우리의 모습일터
그런데 왜 이리 맥없이 한발만 내 딛고 있는지...
그리고 문도 안달려 있는 통일의 문은 왜 이리 좁은지....



모든 공산주의 국가가 안하는 스포츠... 야구
그렇다면 왜 쿠바에는 야구가 국기일까?
여기에는 다분히 정치적인 요소와 전통적인 요소 두가지가 있었으니...

스페인의 식민지배를 받아온 쿠바 사람들이 정치적 독립의 의지로 투우를 하지 않고
야구를 함으로서 그들의 독립 의지를 나타냈다고 한다.
물론 스페인에서는 야구를 금지 시키려 했으나 쿠바인들의 야구팀 이름들이 정치적인 이름으로 되어있었고....
예를 들면 " Llara" 라는 팀의 이름은 쿠바에서 독립 운동이 처음으로 일어난 곳이라는데
우리로 치자면 뭐랄까 '아우네 장터 야구팀'이랄까
이런 정치적 상징적 의미로 야구는 쿠바인들의 사랑을 받게되고...

1890년대에는 무려 200여개의 야구팀이 생겨나고, 야구는 쿠바사람들의 일상생활중 하나가 된다.

1878년에는 공식 쿠바 리그가 만들어지고 이것은 미국밖의 최고의 리그라고 하지만 아마도 미국보다도 강했던 최초의 리그였을지 모른다. 그당시 쿠바의 공식리그는 겨울 리그 였는데 뜻밖에도 그 이유는 미국의 프로 선수들을 참가 시키기 위함이였다고...미국의 프로 선수들이 어떤 사람들이였는지에 대한 설명은 없으나 아마도 메이져 선수는 아닌듯 하다.

왜냐하면 1947년 재키 로빈슨이 메이져 리그의 유색인종장벽을 넘은 후에는 ( 이런 1947년 까지도 흑인은 메이져에서는 뛰지 못했다는 말인가 ) 미국의 프로들이 쿠바 리그에 참가 하지 않았다는 것으로 보아 아마도 그당시 쿠바 리그에 참가한 사람들은 흑인이나 쿠바출신의 미국 마이너 프로들로 생각된다. 1959 년에는 무려 메이져리거의 10%가 쿠바 출신인적도 있었다니 놀라울 따름....

암튼 그렇다면 전통적인 이유는 무엇일까?
원래 "Batus" 라는 쿠바 원주민의 전통 스포츠가 있었는데
풀을 둘둘말아서 공처럼 만든것을 사용하는 거라는데 ... 궁굼하기도 함.






그립을 보여주는 피델 카스트로의 투구폼

순수한 아마추어의 모습이 느껴진다.


오 더 순순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