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ursday, 27 October 2005

"불세출의 대타자" 장훈- 이야기 여섯

자이언츠에서 제 2의 황금기자이언츠에서의 선수생활은 30대 중반을 넘긴 장훈 선수에게 제 2의 황금기였다. 프로 입단 4년 만인, 만 21살때 타율 3할3푼3리. 홈런 31개로 MVP에 오르고 수위타자 7번이라는 경이적인 기록 이후, 쎈트럴 리그 요미우리로 이적전 1975년 장훈 선수의 타율은 상대적으로 저조한 .276 그러나 자이언츠 이적 첫해, 무려 182개라는 경이적인 리그 최다 안타와 .355를 기록한다. 새로운 리그에 대한 적응 차원을 넘어 양대리그 수위타자를 향한 성적이였다, (타율조작만 아니였다면,,,,) 그야말로 관록이 붙을 때로 븥은 장훈 선수였던 것이다.

장훈 선수의 투입이 얼만큼 팀에 공헌 했는가 하는것은 성적이 증명한다. 장훈 선수가 이적한 첫해와 다음해, 자이언츠는 리그 우승 ( 재팬 시리즈 우승은 실패 )으로 보여진다.


NHK-TV 장훈 선수 다큐멘터리 제작
장훈 선수의 활약을 에상했기 때문이였을까? 1976년 NHK-TV는 자이언츠로 이적한 장훈 선수에 대한 다큐멘타리를 제작한다.



NHK-TV 에서는 장훈 선수의 오른손을 촬영하고 싶다는 요청을 한다. 아마도 여러 시련을 이겨낸 모습을 그리고 싶었을것이다. 재일 한국인이라는점과 신체의 장애 까지.... 그러나 장훈 선수는 단호히 거절한다. 어머니에게도 보여 주지 않기로 했는데, 매스컴을 통해 공개할 수는 없다는 것이였다. 앞서 다른 포스트에서 썼지만 장훈 선수는 자신의 자신의 핸디캡을 자랑하지 않는다. 장훈 선수는 사실 몇년전 모 잡지와의 인터뷰에서 손을 보여준적이 있다. 시간이 많이 흐른 뒤라 그런지 촬영을 허락했던 것인지 기자와의 특별한 인연 때문인지는 모르겠으나, 오른 손이 잘 구부러 지지 않는 상태인데, NHK-TV 도 그것을 놓지고 싶지는 않았을테지만 결국 오른 손을 찍지는 못한다.


불멸의 기록 통산 3085 안타
여러가지 기록중, 장훈 선수의 가장 큰 기록은 일본 프로야구에서 앞으로도 깨지기 힘든 불멸의 기록 통산 3085 안타. 야구에서 말하는 여러 기록들이 있지만 역시 통산 기록이 그 선수를 말해준다. 한해 반짝하는 기록보다는 꾸준한 성적을 내어왔다는 것인데 이쯤에서 일본 프로야구 역대 기록을 살펴보자



다른 선수에 비해 안타는 많고 삼진은 적어
일본 야구에서 거의 신 대접을 받는 나가시마, 노무라, 왕정치(오 사다하루)도 평균적으로 보면 장훈 선수의 성적에 미치지 못한다. 장훈 선수는 타격의 전부분에 있어서 고른 성적을 내고 있으며, 특히 알짜배기 기록인 개인 통산 안타와 타율 부분에서 확연한 차이를 보인다.

최다안타 부분에서 장훈 선수, 노무라와 오 사다하루가 1, 2,3 위인데 무슨 확연한 차이라고 말하신다면 계산 들어가겠다. 안타 부분에서는 장훈 선수가 1위 그러나 출전 경기수에서는 노무라 1위, 오가 2위 장훈 선수가 3위

노무라와는 265 게임이나 덜 뛰고도 184 안타를 더 친것이며
오와는 79게임을 덜 뛰고도 299 안타를 더 친것이다.

홈런과 타점 부분은 오가 뛰어난 타자였은 틀림없지만, 강팀인 자이언츠에서 거포로 키워진점을 감안 해야 한다.상대적으로 약체인 도에이와는 상황이 다르니까. 베이스에 주자가 있어야 타점을 많이 올리지 주자가 없는데 무슨 타점이 많이 올라갈 턱이 없지 않은가.

다음은 삼진 기록을 보자. 장훈 선수는 통산 삼진에서도 815개밖에 당하지 않았다. 앞서 말한 다른 타자들은 1300 개를 훌쩍 넘기고 있다. 그러니까 경기는 장훈 선수보다 많이 출장 했지만 안타는 적고 삼진은 많은 경우인데



노무라는 265 게임 더 출장 663개 삼진을 더 당함
오는 79게임 더 출장 504개의 삼진 더 당함

그래도 이들은 은퇴후 감독도 하고 나름대로 잘나갔지만 장훈 선수는 구단에 강사로 초빙만 되었을뿐 감독의 자리에는 오르지 못한다. 그러나 이부분에 있어서는 장훈 선수의 입장은 단호하다. 프로 구단에서 감독 제의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거절했다고 한다. 자신은 '감정적임으로 감독은 어울리지 않는다는것' 그러나 그 다음 나온 말은 충격이였다. 선수시절에도 차별받고 공격당했다는것 감독이 되면 더 힘들어 진다는것. 개인적으로는 견딜수있었지만 가족들에게는 그런 고통을 주고 싶지는 않은 가장의 모습....


3085 안타
4년간의 화려했던 자이언츠 선수 생활후, 1980년 장훈 선수는 롯데로 이적하며 지명타자로 전환한다. 그리고
1980년 5월28일 3000 안타를 기록한다. 장훈 선수의 개인 통산 안타수는 3085 안타. 현재 장훈 선수를 제외하고는
그 누구도 3000 안타 이상을 기록한 일본 프로야구 선수는 없다.

3000 안타의 순간은 그야 말로 극적이였다.


3000 안타를 기록하는 순간. 장훈 선수의 3000번째 안타는 홈런 !!!




훈장 수여 장면

1980년 9월 28일에 이미 3000 안타와 500 홈런이라는 경이적인 기록을 모두 만들었지만 장훈 선수는 은퇴를 유보 하고 일년간의 선수 생활을 더 한다. 이유는 롯데의 신격호 회장과의 약속 때문이라고..장흔 선수는 1년 더 뛰는 바람에 통산타율에서 3할 2푼대를 지키지 못하고 은퇴해야 했다. (통산타율 .31916). 그러나 장훈 선수는 <'나의 인생, 나의 야구 일본을 이긴 한국인 장훈' 중에서>말했다" 23년간 나의 야구인생에 결코 후회는 없다."